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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회문제 담은 영화, '토리와 로키타'

by hwangwebsite 2025. 11. 17.

영화 토리와 로키타 공식 포스터. 초록색 배경 앞에 10대 소녀 로키타와 어린 소년 토리가 서로의 팔을 잡고 마주 선 장면이 중심에 배치되어 있다. 로키타는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고, 토리는 파란색 점퍼를 입은 모습이다. 두 사람의 진지하고 절박한 표정이 긴장감을 전하며, 그들의 유대와 갈등을 암시한다. 포스터 중앙에는 ‘토리와 로키타’라는 큰 글씨가 쓰여 있고, 상단에는 “칸영화제 역사상 최초 75주년 특별기념상 수상”이라는 문구가 표시되어 있다. 하단에는 개봉일 ‘2023.05.10’과 해시태그 “#지켜주고 싶은 남매를 만나다”가 적혀 있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 포스터

영화 토리와 로키타(Tori et Lokita)는 단순한 픽션이 아닌, 오늘날 유럽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 드라마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풍요롭고 안정적인 유럽 복지국가의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민 문제, 청소년 착취, 불법 이민자에 대한 무관심과 방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벨기에 출신 다르덴 형제는 이 영화에서 혈연 관계는 없지만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는 두 이주 청소년 ‘토리’와 ‘로키타’의 이야기를 통해, 유럽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무형의 폭력과 제도의 한계를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토리와 로키타가 보여주는 유럽의 사회적 단면과 그 메시지를 상세하게 해석하고, 우리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단지 유럽의 문제가 아닌, 다문화 사회로 진입 중인 대한민국에게도 큰 의미를 주는 영화입니다.

이민자 아동의 현실을 담은 이야기

토리와 로키타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벨기에에 도착한 두 명의 이주 청소년의 삶을 따라갑니다. 토리는 이미 난민으로 인정되어 법적인 보호를 받는 상태지만, 로키타는 아직 서류조차 없는 불법 체류자입니다. 두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만났고, 이방인의 땅에서 서로를 형제처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로키타는 합법적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여러 차례 면접과 서류 작업을 반복하지만, 관료제의 벽은 단단하기만 합니다. 그녀의 고통은 단지 행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체류 신분이 없으면 합법적으로 일할 수도, 공부할 수도, 병원에 갈 수도 없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마약 운반과 같은 위험한 일에 손을 댈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이들의 고통을 드라마틱하게 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 없이 담백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일상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황인지 관객 스스로 느끼게 합니다.

 

또한, 로키타가 신분증을 얻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거나 브로커에게 접근하는 장면은, 종교나 비영리 기관이 이민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한계까지도 보여줍니다. 토리는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그런 로키타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성인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나 의리를 넘어 ‘의존과 생존’의 차원입니다. 토리와 로키타는 혈연이 아님에도 서로를 ‘유일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법과 제도보다 앞서는 인간적인 연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관계 설정은 유럽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배타적이고 제도적으로 제한적인지를 역으로 비판합니다.

 

이 영화는 한 개인이 처한 불안정한 삶의 구조를 통해 관객에게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로키타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현실을 직면하라는 감독의 경고이자 촉구입니다.

사회 시스템의 무관심과 복지의 역설

벨기에는 유럽에서도 복지와 인권, 법치주의가 잘 정착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토리와 로키타는 이처럼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 속에서도 여전히 소외되고 배제되는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특히 이민자, 난민, 청소년 같은 사회적 약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감시 대상’이 되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로키타는 체류허가를 얻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그녀를 심사하는 복지 담당자는 그녀의 진심이나 상황보다 서류와 절차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 결과 로키타는 제도 밖으로 밀려나고, 정체불명의 브로커를 통해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복지 시스템이 존재함에도 실제 보호는 제공되지 않는 이 아이러니는 유럽식 제도의 한계를 상징합니다. 로키타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유럽에 왔지만, 이 시스템 안에서 그녀는 점점 더 위험에 빠지며, 심리적·물리적으로 파괴되어 갑니다.

 

토리 역시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지만, 로키타와 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정한 정서 상태를 보입니다. 사회는 그를 ‘보호’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호시설에서도 정서적 지지나 애정은 부재합니다. 그는 사랑을 갈구하지만, 시스템은 감정까지 관리하지는 않습니다.

 

다르덴 형제는 이처럼 무기력한 복지 시스템을 통해, ‘보호’라는 단어의 허구를 해부합니다. 관료주의에 기대고 있는 제도는 인간의 삶을 수치로만 판단하며, 결국 위기 상황에 빠진 이들을 방치하거나 범죄로 몰아갑니다.

 

결국 로키타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고, 토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폭력과 위험을 감수합니다. 이는 어린아이에게 결코 부여되어서는 안 될 책임이지만, 사회는 이 책임을 그에게 미루고 있습니다.

다르덴 형제의 연출 방식과 영화적 메시지

토리와 로키타는 다르덴 형제의 연출 미학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과잉 연출이나 감정적 음악 없이, 관객 스스로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핸드헬드 카메라와 실제 공간에서의 촬영, 비전문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등은 다큐멘터리적인 사실감을 부여하며, 관객이 감정을 억지로 이입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구조적으로도 철저히 ‘현실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플래시백도 없고, 인위적인 반전도 없으며, 사건의 흐름은 일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따릅니다. 그 안에서 로키타가 겪는 무력감, 토리가 감당하는 분노와 절망은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영화는 ‘침묵’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많은 장면에서 등장인물은 말보다 눈빛, 행동, 망설임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한 표현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다르덴 형제가 이 영화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당신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이 무력한 방관자가 되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는 고의적 연출이며, 결국 우리가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또한, 이 영화는 특정 국가나 인종에 대한 고발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든 ‘서류’가 사람보다 우선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든 로키타가 될 수 있고, 토리가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복지제도라는 껍질 속에 숨은 무관심과 차별은 국가를 막론하고 존재한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결론: 요약 및 Call to Action

토리와 로키타는 단순한 이민자 청소년의 이야기를 넘어, 오늘날 유럽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 품고 있는 모순과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 작품은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소외된 존재들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들의 침묵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었다.

 

다르덴 형제는 감정의 과잉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연출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사회적 책임과 인간 존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 역시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단지 정책이나 제도 개선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으며, 먼저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워주었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제시해주었다.